그럼 SF에서 이름의 의미는 어떤 것을 나타낼까요?
SF에서는 이름을 부여함으로써, 감독이 뜻하는 가치관을 나타내거나,
등장인물들에게 성격을 부여하거나,
어쩌면 등장인물이 겪게 될 결말을 스포일러 하기도 합니다.
신카이 마코토를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감독 계열에 올려준 작품인
<너의 이름은>에서도 이름은 굉장히 중요한 요소로 쓰입니다.
서로 다른 시간, 다른 공간에 존재하는 두 인물이 우연한 인연으로 엮이며 시작되는 이야기로,
둘은 서로의 몸이 바뀌어 살아가는 신기한 경험을 반복하면서 서로의 삶에 깊숙이 스며들죠.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서로의 이름조차 떠올릴 수 없게 되죠.
이름 하나 잃었을 뿐인데, 마음에 남은 감정조차 옅어지고, 존재는 멀어져가게 됩니다.
그 장면에 이르러서는 보는 관객들마저 서로의 이름을 떠올리길 간절히 바라게 되죠.
이처럼 SF 속에서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우주선, 로봇, 외계 생명체, 혹은 낯선 행성에 붙여진 이름은
그 자체로 그 존재의 정체성에 대해 말해주곤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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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C. 클라크의 대표작인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나온 인공지능 HAL9000의 이름은
20세기 IT 기술 산업 분야를 선도했다고 알려져 있는 미국의 정보기술 기업인
IBM에서 한 글자씩만 앞당겨서 만든 이름입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속 HAL은 누구보다 차갑고 이성적인 로봇이지만,
죽음의 순간에서는 누구보다 '인간적인' 감정을 나타내는 인공지능입니다.
그 이름 자체로도 인간지능과 인간 사이의 불안한 경계를 상징하죠.
인간을 닮았지만, 결국 인간이 아닌 존재의 정체성을 드러내주는 이름입니다.
그리고 가끔은 로봇들에게 딱딱한 이름이나 식별 번호 대신
토니상 6관왕으로 유명해진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속 주인공인
올리버나 클레어처럼 너무나도 인간적인 이름을 붙여주곤 합니다.
그리고 인간과 다름 없는 이름을 가진 인공지능은
기계가 아닌 하나의 존재로서 감정을 가지고 다른 존재와 관계를 맺고, 상호작용을 시작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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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SF 속 이름들은 단순한 불리는 이름이 아닌, 이야기를 꿰뚫는 암시로 쓰이기도 합니다.
영화 〈인터스텔라〉에 등장하는 로봇 타스(TARS)와 케이스(CASE)의 이름도 그중 하나예요.
단순한 기계적 약어처럼 보이지만, a tesseract, 즉 4차원 도형인 정팔포체의 애너그램을 바꾸면
Tars et Case가 되고, 라틴어에서 "et"은 "그리고"를 뜻하죠.
결국 두 로봇의 이름은 정팔포체, 즉 4차원의 구조를 암시하는 것 같지 않나요?
정팔포체는 우리가 사는 3차원을 넘어 4차원, 즉 시간과 공간을 동시에 아우르는 개념이죠.
그렇기에 타스와 케이스는 단순한 보조 로봇이 아니라,
시공간을 넘나드는 존재로 읽힐 수 있어요.
영화 후반부, 블랙홀 너머 5차원 공간에서 타스가 살아남고 되돌아오는 장면은
마치 이 이름에 담긴 의미를 상징처럼 실현하는 순간 같아요.
이처럼 SF는 이름 하나에 과학적 개념과 철학적 메시지를 함께 담습니다.
타스라는 단어가 단순한 이름이 아닌, 시공간을 꿰뚫는 하나의 방정식처럼 느껴지는 이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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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외로 SF 작가들은 이름을 등장인물에 국한된 설정을 넘어,
이름을 통해 그들이 창조한 세계의 철학과 윤리관을 설계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소설 <우리들> 속에서 이름 대신 코드화 된 언어로 통제되는 걸 보여줌으로써,
과학기술이 발달할 수록 인간의 고유한 이름이
번호나 알고리즘의 일부로 대체되는 미래를 그리기도 했으며,
소설 <유년기의 끝>에서 인간들을 관리 감독하겠다고 나타나는 외계 종족 이름은
오버로드(Overlords)로, 한국어로 직역하면 지배자가 됩니다.
이름만으로도 그들의 위치와 위압감을 암시하기도 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