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으로부터: 정세랑 장편소설
시선으로부터: 정세랑 장편소설
  • 저자 : 정세랑 지음
  • 출판사 : 문학동네
  • 발행연도 : 2020
  • ISBN : 9788954672214
  • 자료실 : [세곡마루]자료실
  • 청구기호 : 813.7-정54ㅅ
[사서의 한마디]

"살아남은 모든 여성에게 존경과 사랑을"
심시선이라는 연결고리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한 가족이 하와이로 떠난다. 그들의 어머니이자 할머니인 심시선의 십 주기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다.
생전 '형식만 남고 마음이 사라지면 고생일 뿐'이라고 제사를 반대했던 심시선이었고, 그의 후손들답게 심시선 여사가 싫어하는 방식으로 행사를 치르진 않을 예정이다.
두 번의 결혼, 서로 다른 성씨로 이루어진 이 가족은 정세랑의 사람들답게 올곧다. 가족 각각의 개성, 단정하고 부지런한 성품과 포기하지 않는 품성, 새와 바다를 사랑하는 다정한 시선과 테러 이후의 삶을 추스르기 위해 애쓰는 마음.
그들의 면면을 거슬러 올라가면 '가모장' 심시선이 있다. '늘 소문과 분쟁에 휩싸여 사셨던' 등을 돌리고 선 여자. T면과 하와이와 뒤셀도르프를 거치며 늘 논쟁을 불러 일으키던 화가이자 작가,
우리는 '존재한 적이 없는' 이 사람, 심시선을 기억해야 한다.

[출판사 서평]

정세랑 작가의 모든 글을 사랑하지만, 그중 가장 사랑하는 것을 꼽으라면 『시선으로부터,』라고 말하겠다. _김하나(작가)

이토록 한국의 현대사를 정통으로 관통하는, 그러면서도 경쾌함과 꼿꼿함을 잃지 않는 인물을 본 적이 있던가. _박상영(소설가)

가부장제에 포섭되지 않은 여성이 가장이 될 때, 가족들이 어떠한 결을 갖고 살아갈지에 대한 기분좋은 전망을 준다. _김보라(영화감독)

진행자 심시선씨, 유일하게 제사 문화에 강경한 반대 발언을 하고 계신데요. 본인 사후에도 그럼 제사를 거부하실 건가요?
심시선 그럼요, 죽은 사람 위해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봤자 뭐하겠습니까? 사라져야 할 관습입니다.
김행래 바깥 물 좀 드셨다고 그렇게 쉽게 말하는 거 아닙니다. 전통문화를 그리 우습게 여기고 깔보면 안 돼요.
심시선 형식만 남고 마음이 사라지면 고생일 뿐입니다. 그것도 순전 여자들만. 우리 큰딸에게 나 죽고 절대 제사 지낼 생각일랑 말라고 해놨습니다.
진행자 아, 따님에게요? 아드님 있으시잖아요.
심시선 셋째요……? 걔? 걔한테 무슨. 나 죽고 나서 모든 대소사는 큰딸이 알아서 잘할 겁니다.
김행래 몹쓸 언행은 아주 골라서 다 하시는군요.
심시선 선생 생각이랑 내 생각이랑 어느 쪽이 더 오래갈 생각인지는 나중 사람들이 판단하겠지요.
_9~10쪽

『시선으로부터,』는 시대의 폭력과 억압 앞에서 순종하지 않았던 심시선과 그에게서 모계로 이어지는 여성 중심의 삼대 이야기이다. 한국전쟁의 비극을 겪고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난 심시선과, 20세기의 막바지를 살아낸 시선의 딸 명혜, 명은, 그리고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손녀 화수와 우윤. 심시선에게서 뻗어나온 여성들의 삶은 우리에게 가능한 새로운 시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협력업체 사장이 자행한 테러에 움츠러들었던 화수는 세상의 일그러지고 오염된 면을 설명할 언어를 찾고자 한다. 해림은 친구에게 가해진 인종차별 발언에 대신 화를 내다가 괴롭힘을 당했지만 후회하거나 굴하지 않는다. 경아는 무난한 자질을 가지고도 오래 견디는 여성이 있다는 걸 보여주면서 뒤따라오는 여성들에게 힘을 주고자 한다. 바로 심시선이 그러했듯이.

이제 내가 그 아주머니들보다 나이가 많은데, 나는 영영 음식을 못하는 사람으로 남았으니 비척거리는 젊은이가 찾아와도 먹일 것이 없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손맛이 생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아무것도 당연히 솟아나진 않는구나 싶고 나는 나대로 젊은이들에게 할 몫을 한 것이면 좋겠다. 낙과 같은 나의 실패와 방황을 양분 삼아 다음 세대가 덜 헤맨다면 그것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_299쪽

정세랑이 불러낸 인물들은 인간이 특별할 것 없는 존재로서 다른 존재들과 어우러지는 세상을 희망한다. 까만 고양이를 실수로 밟으면 안 되니 센서등을 달아야 한다고 말하는 난정, 인간만의 미감을 위해 새들이 죽어가고 있는 현실에 분노하는 해림, 꽃목걸이의 면실이 거북이를 죽일 수 있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이곳에 있다. “남이 잘못한 것 위주로 기억하는 인간이랑 자신이 잘못한 것 위주로 기억하는 인간. 후자 쪽이 훨씬 낫지”라는 말은 이들을 설명하기에 더할 나위 없다. 자신이 잘못한 것 위주로 기억하는 사람은 인간으로서의 책임을 절실하게 통감하고,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위기와 위험을 예민하게 짚어낸다. 유조선 침몰 소식에 새들을 씻기러 가는 지수의 뒷모습을 보며 우리는 정세랑의 섬세한 감수성이 가리키는 세상이 멀지만은 않음을 예감할 수 있다.

심시선 여사와 그의 가족들은 부조리와 불합리에 소리낼 만큼 강단 있으면서 세상을 예민하고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연약함을 가지고 있다. 연약함은 세상의 빈틈을 날카롭게 감각하고, 빈틈의 존재들은 강단 있는 마음을 나누며 목소리를 획득한다. 정세랑의 세계에서 선함은 강함으로 쓰인다. 선한 의지는 강한 행동을 추동하고, 어떤 존재도 소외시키지 않는 세계에 대한 상상력을 고안해낼 것이다. 우리에게 남은 일은 정세랑이 건네주는 선함의 상상력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저자 소개]
저자 : 정세랑
198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10년 『판타스틱』에 「드림, 드림, 드림」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2013년 『이만큼 가까이』로 창비장편소설상을, 2017년 『피프티 피플』로 한국일보문학상을 받았다. 소설집 『옥상에서 만나요』 『목소리를 드릴게요』, 장편소설 『덧니가 보고 싶어』 『지구에서 한아뿐』 『재인, 재욱, 재훈』 『보건교사 안은영』이 있다.